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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동기부여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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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거 2019. 9. 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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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보면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많다.

레퍼토리는 뻔하다.

자기는 어떠어떠해서 얼마나 힘들었고 현실이 너무 싫었지만, 그럴수록 이 악물고 버텨 극복해냈다. 여기에 눈물 젖은 썰까지 곁들이면 더욱 그럴듯해 보인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삶에 긍지를 심어준다.

"와...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성공했지? 나도 죽을 만큼 노력해야겠어"

새로운 인생 계획을 짜고 눈부신 미래를 꿈꾼다. 

벌써부터 성공한 느낌이 들고 나도 몇 년 뒤에 유튜브에서 자수성가 스토리로 인기 몰이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행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그게 내가 성공할 확률은 정말 낮다. 경험적으로 알지 않은가?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누구든지 '나라면 할 수 있다'라고 착각한다.

나에게 신의 계시가 내려올 거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뭐 영상 하나 보고 내 인생이 영화처럼 바뀌어서 뭐든 다 이겨낼 거라 생각하는가?

 

혹자는

"인 서울도 못하는 재수생이니까 저런 말이나 하는 거지;" "네가 뭔데 나보고 안 된대?" 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독자는 논점을 잘못 잡았다. 나는 독자를 비방하고 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저런 영상들이 의도치 않게(확신할 순 없다) 사회의 부조리를 덮어버리고 모든 잘못은 개인으로 돌려버리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 사회는 죽을 만큼 노력해도 실패하면 죄다 자기 탓으로 돌려버린다.

"더" 노력했어야지 라며 말이다.

 

A국이 있다.

100개의 사과가 있고, 100명의 사람이 있다.

99명은 5개의 사과를 나눠 먹어야 하고

나머지 1명, S라는 사람은 95개의 사과를 독점한다.

99명은 5개의 사과를 나눠 먹어야 하기에 독하게 경쟁한다.

99명 중 94명은 경쟁에서 패배하고, 승리한 5명은 당당하게 사과를 한 개씩 챙긴다.

그리고 그 5명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하위 1프로, 상위 5프로 되어 사과 얻어낸 썰"이라며 경쟁 과정에 치열했던 자기 이야기를 해댄다.

나머지 94명은 댓글을 단다.

"감사합니다 ㅇㅇ님ㅜㅜ 저도 ㅇㅇ님처럼 죽을 만큼 노력해서 꼭 사과를 얻어내겠습니다"

"슬럼프였는데 ㅇㅇ님 영상 보고 동기 부여됐습니다. 저도 다음 사과 경쟁에서 꼭 승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경쟁에서 패배한다. 통계적으로 그렇다.

영상 하나로 인생이 바뀔 리가 없다.

게다가 이런 영상은 사회의 부조리함은 침묵시켜버리고 자기 잘못으로 돌려버린다.

사람들은 개인과의 관계에서는 남 탓하기에 익숙하면서, 취업난이나 임금격차에는 자기 탓을 해버린다.

"난 왜 이렇게 의지가 박약할까 ㅇㅇ님은 하루 24시간 중에 자는 시간 빼고 전부를 경쟁에서 이기려고 노력했다던데.. 난 쓰레기인가?ㅜㅜ 내일은 꼭 18시간 연습해야겠다"

"하아.. 난 왜 이렇게 유혹을 이겨내지 못할까.."

등등

그들은 사회적 부조리는 탓할 생각이 없다.(인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크다) 사회를 탓하는 건 패배자의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잊힌 존재가 있는데 사과 95개를 가져간 S다.

S는 이전 경쟁에서도 95개의 사과를 꾸준히 가져갔다.

S는 외모도 뛰어나고 영리하다. 훌륭한 언변으로 사람들에게 95개의 사과를 차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S를 비판할 생각은 일체 접어버린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5개의 사과를 차지하는 일.

그것이 그들의 목표.

자신을 더더 채찍질해야 한다. 더더더!!! 그래야 살아남는다.

패배는 오롯이 내 탓이다. 내가 무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독하지 못해서다.

그럼 묻고 싶다.

아니, 99명 중에 5명만 특권을 누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가?

1명이 과반의 혜택을 누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가?

왜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먹고살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는가?

나는 환멸이 치밀어 오른다.

 

우리 삶에서 '연대'와 '비판 의식'이 일상이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동기부여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 대단하다. 남들이 못하는 노력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동기 부여하는 사람 들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런 동기부여 콘텐츠가 생기고, 많은 사람이 본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인생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게을러져서가 아니다.

사회 구조가 이상해져서이다.

IMF 이후로 비정규직은 기형적으로 증가하고,

불평등 지수도 치솟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침묵하는 게 아니라 모르고 있다.

사회가 개인에게 성공하지 못하는 건 '네 잘못'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리석고 작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이라곤 익명의 장에서 글을 쓰는 것뿐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