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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 논란, 음원 사재기를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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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거 2019. 11. 28.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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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블락비의 멤버 박경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티스트의 실명을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에 대한 의견을 드러냈다.

현재 해당 트윗은 삭제된 상태이며, 저격당한 바이브 측은 박경과 그의 소속사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나는 일반적인 시선과 다른 프레임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싶다.

 

(음원 사재기가 사실임을 전제하고 있다. 즉, "정말 사재기했다"를 '전제'로 한다. 기정 사실화하는 것은 아니고. 논리 전개를 위한 전제일 뿐이다.)

 

내가 이 글에서 가장 피력하고 싶은 건

'사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음악 시장의 구조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다.

 

멜론 차트(2019.11.27/PM11시 기준)를 살펴보자

의혹받는 연예인을 제외한 TOP 30인을 추려내면

 

1. 아이유 (카카오 M 소속)

2. 엑소 (SM 소속)

3. 노을 (데뷔 17년 차 그룹)

4. 이디나 멘젤, 오로라 (겨울왕국 OST)

5. 마마무

6. 악동뮤지션 (YG 소속)

7. 장범준 (슈퍼스타 K 준우승)

8. MC몽 

9. 볼빨간 사춘기, 웬

10. 태연 (SM엔터테인먼트)

11. 마크툽

12. 폴킴

 

이 중 마크툽을 제외하면 대중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이다. (마크툽 역시 Marry me로 꽤나 유명하다) 또한 그들은 소속사가 크고 보유 자본이 상당한 경우가 많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가수들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논란 없이 30위 안에 든 아티스트들은 죄다 유명하고 좋은 소속사 사람들인가. 다른 말로 하자면, 돈 없고 빽 없는 신인 아티스트는 왜 단 한 명도 없나? 아티스트들이 그렇게 많은데 신인 아티스트들은 단 한 명도 멜론 차트 30등 안에 들 수 없을까. 신인 아티스트들은 죄다 실력도 음악성도 없어서 그런 걸까? 정말로?

 

 솔직해지길 바란다. 송하예, 전상근, 닐로, 바이브, 황인욱 등 사재기 의혹받는 가수들 노래가 별로인가? 사재기 논란을 받고 있지만 그들의 음악이 알려지자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건 사실이다. 길거리를 걸으면 그들의 노래가 나오고 흥얼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고백하건대, 나는 논란 전까지 "송하예, 전상근, 닐로, 황인욱"이라는 가수를 전혀 몰랐다. 나에겐 듣보잡 가수였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를 접했을 때 그들이 실력 있는 아티스트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사재기 논란 '덕분에' 나는 그들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 말은 뭔 말인가. 사재기 논란 없이는 "실력 있는 가수"일지라도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반대로 돈과 빽이 있는 가수들은 유명해지기 쉽다는 거 아닌가? 물론 볼빨간 사춘기나 폴킴, 마마무처럼 저자본 기획사에서 시작해 인지도를 얻은 가수들도 있지만, 그들은 예외로 간주할 수 있을 만큼 극소수에 해당한다. 돈 많은 소속사 가수들이 인기를 끌기 쉽다. 막강한 자본으로 프로듀싱하고, 막강한 자본으로 홍보하고, 막강한 팬이 있다.

 

우리나라 음악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출발선이 다른 달리기 경주다.

 

실력 있는 무명 가수들은 억울하다. "내가 저 새끼들보다 노래가 더 좋고 실력도 더 좋은데 왜 아무도 모르냐! 노래를 내고, 노래가 좋아봤자 뭐해!! 아무도 모르는데..! 이대로 음악만 하다 굶어 뒈지는 거 아니냐 다른 일이라도 알아봐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구조적 불평등이 계속될수록 아티스트들의 창작 욕구는 저하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들이 억울함 뿐만이 아니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가 사회 전반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사랑받는 아티스트들이 한정적일수록 우리나라 음악 문화는 획일적이게 되기 때문인데, 다양한 음악이 존중받을수록 그 사회의 문화가 건강하고 행복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대중문화 구조는 다양한 음악과 아티스트들이 존중받을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현재 언론은 사재기 가수들에 대한 비판밖에 없다. 그들이 사재기를 한 게 사실이고 이로 인해 음원 차트가 조작된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시장 논리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절대 반박할 수 없다. 그들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사실에만 주목하고, 무명 가수들의 아픈 속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린 또다시 대형 기획사의 노예가 되고, 문화의 획일화에 기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구조적 가해자"가 된다. "오죽하면 사재기를 했을까"라고 곱씹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대중문화에도 유리천장이 있음을 절감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이 유리천장에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내길. 독자들이 나의 손을 잡아주길. 우리 사회가 행복해지길.

'듣보잡 가수'도 실력만 있다면 사재기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