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수능 공부가 간절하지 않습니다.
매일 하지만 간절하게 뭘 이루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르지 않아도 재밌고, 모르는 걸 알아가는 게 재밌습니다. (요즘엔 비문학 지문 구조 분석하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가고 싶은 학교에 학과도 있지만 간절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 그럼 왜 재수를 했냐! "라고 묻는 분도 있을겁니다.
재수 시작 계기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죠. 좋은 대학 안 가면 밥 벌어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좋은 대학'을 가는 나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가는 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은 아직까지도 견고합니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임하영 ', ' 대학 가게? 그냥 사장해! -안병조, 정효평'
이 두 책이 제 생각의 단초인데, 이 책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책들이 '주체적 삶'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제 생활이 만족스럽습니다.
적당히 공부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책도 읽으면서 꿈을 꾸는 일.
고등학교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었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간절하고 죽기 살기로 하라!'라고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가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대부분의 청춘이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에 대한 고려 없이, 남들 다 하는 일에 뛰어듭니다.
간절함? 없습니다.
가끔 유튜브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합격생 수기, 만점자 후기를 보며,
"나는 왜 이렇게 간절하지 못할까..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박약할까"라며 자책하죠.
그런데, 저는 어떻게 좋아하지도 않은 일을 간절하지 못했다며 자책할 수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그 길이 아니면 안 되나요? 간절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죽기 살기로 하면 먹고살 수 없나요?
당연하지!!라고 말하시는 분께 묻고 싶습니다.
죽기 살기로 노력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이 세상은 정상인가요?
죽기 살기로 노력하지 않았다고 밥벌이도 허용하지 않는 삶이 정상인가요?
적당한 노력에 좋아하는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끔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하는 삶. 그런 삶이 정상이 아닌가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요?
우리는 죽기 살기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나약하고 게으르다'며, '의지가 박약하다며' 폄하해버립니다.
하지만 그런 삶이 가장 인간다운 삶입니다.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에 '인간다운 사람이'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회는 문제입니다.
실패한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문제라는 겁니다.
"실패한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 이겁니다.
하지만 제 주장은 사회에 대한 빈정으로 보일 뿐입니다.
'병신 새끼, 지가 공부 못한걸 남 탓으로 돌리네.'
맞습니다. 공부 못 하는 사람이 사회에 대해 투정 부리는 겁니다.
근데 뭐가 잘못됐나요?
공부 못 하는 사람은 이런 세상에서 못 살겠다고 사회에 이야기하면 안 되나요? 그럴 자격이 없나요?
사회는 개개인이 이루어냅니다.
사회는 개인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줄 세우고 서열을 만들어서 더 노력한 사람들만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건 모순입니다. 우리는 모두 잘 살아야 하고, 모두 당당해야 합니다.
노력을 한 사람이 대우를 받는 건 정당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이 당연하게 무시받는 건 정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간절하지 못했다며 낙오를 정당화하는 사회는 틀렸다. 이겁니다.
최근에 친구를 만나고 꿈을 이야기하고, 일과와 고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친구도 재수하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말하더군요
"넌 내가 볼 땐 간절한 거 같지 않아."
저는
"맞아 나 간절하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친구가 그 말을 듣더니 한숨을 픽 쉬면서
"간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해!"라더군요
그 말을 듣고 사실 별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압니다.
저도 '간절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라고 불안해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괜찮다'입니다. 간절하지 않다며, 불안해하고, 스스로 자책하는 삶은 저에게 맞지 않습니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에게 맹목적인 간절함은 효과가 없습니다.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한 명도 오지 않는 이 블로그에 들어온 어떤 분은 이 글을 읽으며
'어휴.. 아직 철이 덜 들었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맞은 지 틀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 선택은 제 몫이고, 적어도 불안함에 떠밀려 내린 선택이 아니기에 당당합니다.
그리고 실패를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제가 선택한 실패고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요.
제가 두려운 건, 제 의지도 아닌 일에 억지로 간절함을 갈아 넣어 이도 저도 안 되면서 실패했을 때 겪는 좌절감입니다.
그럴 땐 탓할 곳이 생깁니다. ~때문에 안 됐다. 하지만 결과는 오로지 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몫이 됩니다.
살기 싫어질 듯합니다.
그래서 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감사한 건 부모님이 제 뜻을 존중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수능이 끝나면 독립심을 기르고 싶습니다.
제 스스로 돈도 벌어보고, 경영에 대해 어깨너머 배워보고, 올해 생각해놨던 사업 아이템도 구체화해볼 생각 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도 마음껏 배우고 싶습니다.
고 3 때는 친구를 잃지 않는 것만큼 간절한 게 없었는데, 이제 저에게 친구가 아니어도 소중한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저의 인생이 틀렸다고, 두려움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틀리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여러분에게 제 생각을 존중받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그 자체로 존중하는 사회가 오길 바랍니다.
초등학생이든,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성소수자이든, 그 사람 그대로 존중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